[청년과미래 칼럼] 90년대생 향한 타자화(他者化) 멈춰주세요

청년과미래 / 기사승인 : 2019-12-24 04: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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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아 청년과미래 칼럼니스트
2019년 올 한 해 대중문화계는 B급 콘텐츠의 전성시대였다. SNS에 각종 동영상과 움짤을 대량 양산한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 전국의 알바몬을 대변해주는 장성규의 <워크맨>, 시청률 22%를 달성한 SBS 드라마 <열혈사제>, 올해 극장가의 첫 천만 스타트를 끊은 <극한직업>, 2030 세대의 직통령으로 추앙받는 EBS 연습생 펭수. 이들은 모두 B급 코드를 메인 테마로 내세우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는 이와 같은 현상을 90년대생의 특성과 연관하여 설명한다. 권위주의적 체제에 대한 반발심과 패배의식이 결합하면서 ‘기승전병’(기승전 병맛을 추구한다는 뜻)을 추구하는 90년대생. 이러한 해석은 올해 가장 핫한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에서 비롯되었다. 90년대생의 특징을 세분화해 분석한 <90년생이 온다>는 90년대생을 이해하려는 기성세대의 기본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 책을 지표로 삼으며 90년대생을 자신과는 다른 생명체인 듯이 타자화(他者化)하고 있다.

타자화는 차별의 근간이다.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행위는 두 대상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는 우월하고 타자는 열등하다는 우열의식이 전제되어있다. 그렇기에 우월한 나는 열등한 타자를 끊임없이 대상화하면서, 그를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타자화의 대표적인 예시가 인종주의이다. 인간을 피부색으로 나누어 차별하는 비논리적인 행위는 타자화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나’는 백인이며, ‘타자’ 는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이다. 백인은 끊임없이 유색인종을 타자화하고, 그들이 백인보다 열등한 인종이라 치부하며,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또, 유색인종을 집단으로 묶어 대상화하면서, 그들의 특징을 분류하고 분석하였다. 쉽게 말해 한 개인을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특정 인종의 일부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처럼 논리를 잃은 이분법적 사고를 두고 불합리하다며 목청을 높인다. 그러나 90년대생 혹은 청년 세대를 타자화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각종 매체는 끊임없이 90년대생의 특징을 세분화하고 그들의 사고 및 행동방식의 원인을 분석하려 든다. 이러한 시도의 전제에는 90년대생을 이해하자는 담론이 있다. 이해라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얼핏 보면 좋은 단어인 듯하나, 알고 보면 타자화의 개념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 어휘이다. 90년대생을 나와 다른 타자라 정의하고, 그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으며, 이해해야 할 존재로 여길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상대를 타자화하는 것 또한 내가 상대보다 더 많은 권력을 쥐고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최근 대중이 B급 콘텐츠에 열광하는 현상을 분석하는 문단에서는 매번 당연하다는 듯이 90년대생의 내재화된 패배의식을 원인으로 언급한다. 이는 그들이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스스로 패배의식을 느끼며 본인과 비슷한 불완전한 B급에 더 많이 공감한다는 논리이다. 여기에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 기성 권력층이 90년대 이후에 출생한 이들을 집단화하여 분석하는 안일한 타자화가 전제되어있다. 하지만 90년대생은 분석의 객체가 아니며, 기성세대에게 이해받아야 할 대상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자, 자주성을 가진 독립 주체일 뿐이다.

90년대생에 대해 알고자 하는 적극적인 태도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90년대생을 끊임없이 타자화하며 분석하는 행위는 상호 간의 이해를 통해 세대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층이 일방적으로 이해를 베푸는 것에 불과하다. 90년대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괴생명체가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20~30대 청년이자, 자율성과 자주성을 가진 독립 주체이다. 제발 90년대생을 향한 무분별한 타자화를 멈춰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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