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강주 칼럼] 쑥대밭서 불러보는 ‘쑥대머리’는 ‘붉은 사랑의 한숨’

권강주 객원편집위원 한의학박사 / 기사승인 : 2020-07-15 13: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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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강주 객원편집위원 한의학박사
‘쑥대밭’이란 말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것을 ‘쑥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는 거친 땅, 또는 매우 어지럽거나 못 쓰게 된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풀이한다. ‘묵은 쑥대밭에서 해 먹던 방법’이란 북한 속담은 ‘질서와 체계가 없이 되는대로 마구 해 오던 사업 방법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었다. 유사한 의미로서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는 엉망진창이라는 말이 있다. 일이나 사물이 헝클어져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결딴이 나거나 어수선한 상태를 나타내는 ‘엉망’과 땅이 질어서 질퍽질퍽하게 된 곳 즉 ‘진창’이라는 두 단어를 결합하여 앞뒤도 없고 위아래도 없이 어지럽고 어수선한 상태의 것들을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애써 가꾸지 않아도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식물이 바로 쑥이다. 강둑이나 논두렁, 산비탈, 묵은 땅이나 척박한 땅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식물이다. 화재가 난 땅이나 제초제를 뿌린 땅에서도 제일 먼저 돋아나는 풀이며 심지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나 히로시마, 체르노빌 같은 원폭 투하 지역이나 원전사고가 난 지역에서도 명아주대 등과 함께 가장 먼저 돋아나는 풀이라고 하니 그 강인한 생명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단군신화에 쑥과 마늘이 등장하는 연유(緣由)를 이제야 알만하다. 마늘은 눈보라 휘몰아치는 맵고 추운 겨울 들판, 그 눈 속에서 자라나는 식물이 아니던가.

사정이 그러한데 왜 이 ‘쑥대밭’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냄새가 더 진하게 나는 것일까? 단군신화의 패러독스paradox인가 쑥대밭의 아이러니irony인가. 겨울 들판 마늘밭을 지나 쑥대밭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부정적인 이미지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 봄 여름에 걸쳐 거의 1m 가까이나 자라난 쑥대들이 겨울바람에 이리저리 쓰러지고 뒤엉켜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어지럽고 쓸쓸하고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쑥대밭’ 하면 나는 항상 ‘쑥대머리’가 떠오른다. 머리털이 마구 흐트러져서 몹시 산란한 머리라는 뜻인데, 빗질을 하지 않아서 부스스한 머리 모양보다도 더 심한, 겨울 쑥대밭처럼 흐트러지고 엉킨 머리 모양새라고 하면 족할까? 판소리 춘향가 중 한 대목으로 춘향이 이몽룡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서 자신의 처량한 신세와 초라한 행색을 한탄하며 옥중에서 부르는 애절한 노래로 ‘쑥대머리’가 있다. 옥중가(獄中歌)라고도 한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에 찬자리여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그리움과 원망이 교차하면서 이몽룡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 이 ‘쑥대머리’ 한 대목이야말로 춘향가 중에서도 가장 안타깝고 가슴 저리게 하는 감동의 명장면이라 할 것이다.

수년 전 경기지역에서 한방병원을 운영하던 때 건물 옥상에 모서리마다 꽤 넓은 면적으로 몇 그루 나무와 고추며 상추, 그리고 임실에서 울금농장을 경영하는 친구가 보내준 울금 등등의 농작물을 가꾸며 토끼 몇 마리를 길러본 적이 있었다. 마사토를 채워 넣고 아무렇게나 버려놓은 땅에서는 어디서 날아와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명아주와 쑥, 칡넝쿨들만이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이곳에 토끼들을 풀어 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그냥 무심코 흘려들었던 쑥대밭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을 보면서 이 단어를 실감하게 된 것이다. 이파리는 토끼가 다 먹어치우고 줄기들만이 삐쭉삐쭉 앙상하게 솟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 쑥대밭이란 게 이런 것이었구나 하며 쑥대밭의 의미를 재발견한 것은 쉬지 않고 먹어대는 토끼들의 놀라운 먹성보다도 더 놀라운 것이었다.

옥상 위의 토끼들처럼 몸에 좋은 것은 인간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여타 동물들의 본능이 약용식물에 대한 인류의 지식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늘을 나는 새에게서나 사슴이나 노루에게서, 때론 뱀에게서조차 식물의 질병 치료 효능을 배워 인간에 활용하였다. 위에 언급한 명아주는 어린 순을 식용할 수 있는데 데쳐서 나물로 먹거나 국을 끓여 먹으면 위장관의 활동을 도와 뱃속을 편하게 해주며, 혈액을 깨끗하게 하는 작용이 있어 뇌졸중이나 심장발작 동맥경화 같은 심혈관질환을 예방하고 해열 해독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주가들이 좋아하는 칡뿌리에는 식물성 에스트로겐과 이소플라본 사포닌폴리페놀 등의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태음인체질에는 녹용보다도 더 좋다는 갈용(葛茸)은 봄에 처음으로 돋아나는 칡의 어린 새순을 말하는 것으로서 20cm 정도 채취하여 잘 말려 두었다가 차로 우려 마시면 좋다,

칡꽃을 갈화(葛花)라고 하는데 간을 보호하고 주독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으며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 지금 한창 붉은 보랏빛으로 피어 있는 칡꽃의 꽃말이 ‘사랑의 한숨’이라니 그 의미를 알 듯 모를 듯하다. 밤새 이슬이슬 보슬보슬 가랑가랑 내리는 비에 쑥대와 명아주대, 칡넝쿨은 또 얼마나 길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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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강주 객원편집위원 한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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