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과 희망 전하는 피겨플루티스트 여니… "불혹에 시작한 열정, 더 큰 꿈꿔요"

박고은 기자 / 기사승인 : 2019-12-29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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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아시아타임즈와 인터뷰를 갖는 피겨플루티스트 여니 윤수연씨.

[아시아타임즈=박고은 기자] 차가운 빙판 위에서 피겨스케이팅을 하면서 플루트를 연주하면 어떨까. 가만히 서서 플루트만 불어도 힘든데 날카로운 스케이트화를 신고 차디찬 얼음판 위에서 연기까지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숨이 벅차다. 

 

그런데 이를 능수능락하게 하는 예술가가 있다. 유망한 플루티스트였다가 김연아 선수의 멋진 연기에 용기를 얻어 불혹에 나이에 열정적인 도전을 시작한 세계 최초의 '피겨플루티스트' 여니(yeoney·한국이름 윤수연)다. 

 

기자는 최근 서울 송파구의 카페에서 여니를 만났다. 밝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자신을 두 딸의 엄마라고 소개하는 그는 일견에도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학창 시절에 우연히 플루트를 접하고 푹 빠졌지만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정식 레슨을 받을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차게 선생님을 찾아가 '엉뚱한 제안'을 하고 배움을 청했다. 

 

"플루트 정식 레슨을 받고 싶었는데 집안 여력이 되지 않아 꿈도 꾸지 못했어요. 그러다 무슨 깡이었는지 플루트 선생님을 찾아가 후불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을 테니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 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죽기 살기로 배웠어요. 덕분에 1년 만에 음대에 들어갈 수 있었죠. 당시 최고의 경쟁률을 뚫고요"

 

힘들게 들어간 음대 등록금을 벌기 위해 그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하루의 4번씩 파트타임 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좋은 기회가 생겼고 2010년 음악저널 7월 호에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행복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 환경이 좋지 못했어요.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온 제게 입던 옷도 서슴없이 주는 사람이 생겨 믿고 따랐는데 그 사람에게 한 순간 배신을 당했어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그 뒤로 사람을 믿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렇게 2년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방황을 끝낸 그는 다시 세상을 살아가고 싶어서 윤수연으로 개명했다. 그리고 아트스피치 저자인 김미경 강사를 만난 뒤 '희망과 힐링'에 대해 알게 됐다. 김미경 강사의 강의를 듣고 자신도 상처받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한국화 초대 작가인 아버지와 힐링센터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그림으로, 저는 음악으로 희망을 잃었던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자는 취지였죠. 힐링센터를 만든 뒤 사람한테 받았던 상처도 치료하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했어요"

 

그런 그에게 '피겨플루티스트'를 꿈꾸게 한 일이 발생한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 출전한 김연아 선수의 너무나 매혹적인 연기를 보게 된 것이다. 많은 관중들 앞에서 떨리고 부담감이 많을텐데도 불구하고 완벽한 연기를 해내는 김연아 선수의 '강한 멘탈'과 '자신감'에 그에게 또 한 번 용기를 북돋아줬다. 그래서 '차가운 얼음 위에서 피겨스케이팅을하면서 플루트를 불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전주 아이스링크장에서 피겨스케이팅을 타며 플루트를 불고 있는 여니 윤수연씨.


물론 40세라는 나이에 새로운 도전에 나서자 우려의 시선도 컸다. 

 

"평소에 하던 플루트나 하지 이제 와서 새로운 걸 도전하냐, 이 나이에 넘어지면 골반이 끝장난다 등 도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러나 부단한 노력을 했어요. 나무 막대기를 쥐고 스핀 도는 연습, 피겨 연습 중인 딸뻘인 아이들에게 다가가 동작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기도 했어요.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습했다고 보면 돼요"

끝없는 도전 결과 그는 문체부 장관배 피겨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이 행복도 잠시였다. 메달을 손에 쥐고 너무 기쁜 마음으로 도착한 힐링센터가 화마에 휩싸여 있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힐링센터가 불에 타고 있었고, 아버지의 그림 작품과 제 악기들이 한 줌의 잿더미로 됐어요. 어이가 없어서 눈물밖에 안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아버지가 불길 속에서 '하하하' 웃더라고요. 처음에 실성하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때 아버지가 '내 나이 인생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다. 인생 공수래공수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나니 '불길이 동네방네 더 퍼지지 않은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소에도 여유 넘치던 아버지께 당시 초연함과 긍정의 힘을 배운 그는 잿더미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꿈꿨다. 연기가 나고 있는 잿더미 속에서 플루트를 꺼내 무작정 희망의 연주를 했고 그게 이슈가 되어서 인간극장에 소개되기도 했다. 

 

▲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아시아타임즈와 인터뷰를 갖는 피겨플루티스트 여니 윤수연씨.

 

그 이후로 그는 '절망'에 끝에 서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건네주는 '나부터의 캠페인'을 스스로 했다. 열심히 한 것에 대해 박수쳐주고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는 것에 응원해주는 사회,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지구촌 최대 스포츠 축제인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한 몫 거들었다.  

 

"올림픽 시작 전 나라 잡음이 많았잖아요. 제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떻게 올림픽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올림픽 스타디움 출입구 앞에서 플루트 연주를 하며 방문객들을 맞았어요. 또 올림픽 기간 쓰레기도 줍고 봉사활동도 했지요. 이후 올림픽이 성황리에 마무리된 걸 보고 제가 솔선수범해서 긍정에너지를 전달한 결과인 거 같아 뿌듯했어요"

 

세상에 또 다른 피겨플루티스트를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에 그는 그의 인생이 그대로 녹아 있는 대답을 꺼냈다. 

 

"인내란 좋은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불평없이 노력하고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해요. 비록 거북이처럼 느려도 시작했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노력과 열정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뤄질 수 있습니다. 40세에 도전하는 저 처럼요"

 

불혹에 새로운 열정에 도전한 그는 아직도 더 많은 꿈을 꿈꾼다. 그는 50세에 국제대회에 출전해 전 세계를 돌면서 대한민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이 될 생각이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 보면 김연아 선수와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김연아 선수와 만나면 함께 갈라쇼를 하고 싶다고 얘기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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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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