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영계 이끌던 큰 별…이건희 삼성 회장의 발자취

이경화 기자 / 기사승인 : 2020-10-25 15: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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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 선언으로 경영 혁신…반도체 D램 세계 1위까지
27년간 시총 300배 이상 키워
▲ 1987년 12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취임식에서 당시 입사일이 가장 빨랐던 최관식 삼성중공업 사장으로부터 삼성 사기를 받아든 이건희 회장(왼쪽) 모습. 사진=삼성중공업
[아시아타임즈=이경화 기자] 25일 별세한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에 이어 삼성그룹의 2대 회장으로 삼성전자를 세계굴지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87년 이건희 회장 취임당시 10조원이던 매출액은 27년의 경영기간 동안 약 40배, 시가총액은 당초 1조원에서 무려 300배 이상 증가했다. 


이후 삼성은 1997년 IMF 위기와 2009년 금융 위기를 넘기고 2020년 브랜드 가치 623억 불로 글로벌 5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스마트폰,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는 세계 최고를 달성했다.

▲ 1980년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 모습. 사진=삼성전자
고(故) 이 회장은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5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1966년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와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이 회장은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1987년 이병철 창업주 별세 이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취임한 고인은 1993년 신경영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고 이끌었다.
▲ 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삼성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나부터 변하지 않으면 세기말적 변혁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며 신경영 강연 중인 모습.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유명 일화도 여기에서 나왔다. 사진=삼성전자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간중시와 기술 중시를 토대로 경영을 실천하는 신 경영이었다.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도 신 경영에서 나왔다. 삼성은 이 회장의 신 경영 선언 발표 이후 공채 학력 제한을 폐지했고, 능력급제를 시행해 왔다.

그는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임직원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 글로벌 MBA 제도를 도입해 5000명이 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도 했다.
▲ 2004년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을 방문해 방진복을 입고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것도 이건희 회장이다. 한국과 세계경제 미래에 필수며 우수 인재가 필요한 산업특성이 한국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한다는 판단에서다. 1974년 반도체사업 착수이후 과감한 기술개발·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했다. 1992년 이후부턴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이 회장은 사회공헌활동을 경영의 한 축으로 삼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데 앞장섰다.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해 국제사회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전개 중이다. IOC 위원으로 1997년부터 올림픽 TOP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스포츠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 2014년 1월 삼성 신년 하례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같은 해 5월 이 회장은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뒤 6년 넘게 투병생활을 이어오다 2020년 10월25일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진=삼성전자
고인은 2014년 마지막 신년사에서 “미래를 대비하는 주역은 바로 여러분으로 자유롭게 상상하고 마음껏 도전하라”며 “지난 20년간 양에서 질로 대전환을 이루었듯 이제는 질을 넘어 제품과 서비스, 사업의 품격·가치를 높여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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