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미 칼럼] ‘모든 사람은 혼자다’

유연미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0-05-30 16: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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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연미 논설위원
그 후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산행에서 우연히 만난 그 사람, 만나자 마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젖혔다. 집안이야기다. 팔십을 내다보는 연세이니 보따리도 아주 크나큰 것, 당신이 자라난 집안 배경, 형제자매,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와 사돈들, 당신의 배우자와 사돈, 당신의 자식들과 그들의 배우자들, 여기에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이유와 당신의 남편을 만나게 된 배경 등등. 그는 아예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풀었다. 내용은 섬세했다. 누가 보면 수 십년지기의 해후로 착각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가끔 후렴처럼 한 마디씩 건넨다. “내가 미쳤나, 처음본분한테 별 얘기를 다하고 있네” 그러면서도 그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이상한 것은 나 자신도 매 한 가지.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그 이야기는 손색없는 자서전(?)을 완성하며 끝이 났다.


그렇다. 필자는 단지 그에게 이방인에 불과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런 사람 말이다. 이를 대변하는 현상이 있다.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이다. 이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심리를 의미한다. ‘낯선 사람이 편하다’? 그렇다. 때로는. 아마도 한 번쯤 이러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도 있을 게다. 이와같은 모양새의 원인으로 몇 가지 이유를 담고 있다. 먼저 ‘마음의 부담’이 없다. 다음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그리고 비밀스런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전이 될 걱정이 없다. 이 모두는 직 루빈(Zick Rubin)의 주장이다. 이 현상을 처음 사용한 심리학자다. 이와 같은 이유의 골자는 결국 화자(話者)의 ‘속내 감추기’다. 그의 상대인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 대해서 말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하나 더 추가 하려 한다. 바로 ‘외로움’이다. 그렇게 함으로써(속내 감추기) 밀려오는 외로움 말이다. 그것의 깊이가 깊을수록 외로움도 그만큼 깊어지는 것이다. 속내 감추기와 외로움, 이는 비례관계다. 물론 필자의 주장이다. 


이 현상의 주인공은 당연 화자다. 그 사람 주변에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루빈의 주장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다수 속의 ‘외로움’을 원인의 하나로 주목한 이유다. 주변에 많은 가까운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은 없다? 그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상황이겠는가! 그러니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는 것이 아니던가! 결국 외로움을 잉태하는 속내 감추기, 이를 일찍이 주장한 사람이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이다. 그의 저서 『대도시와 정신적 삶』을 통해서다. 좀 더 자세히 보자.


짐멜은 ‘대도시’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은 ‘외로움과 쓸쓸함’을 깊게 느낀다고 강조한다. 소위 ‘군중 속’에서의 ‘외로움’. 그는 그 원인으로 서로의 ‘상호 무관심’과 ‘속내 감추기의 태도’라고 말한다. 이 상황의 핵심은 ‘자유’를 느끼고 싶은 개인의 욕망이다. 그 자유를 위해 의도적으로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속내 감추기의 태도를 지향한다는 것. 자유를 위해 선택한 외로움이다. 여기에서 자유와 외로움은 비례관계, 이는 더 많은 자유로움을 위해 더 깊게 그것들(상호 무관심과 속내 감추기)을 선택한다면, 외로움은 그만큼 더 깊어짐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신체적 거리’와 ‘정신적 거리’의 관계를 밀접하게 보고 있다. 그러기에 거주하는 범위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자유의 폭도 달라진다는 것. 머무는 지역이 협소 하면 그 만큼 외로움은 덜해 지지만 자유의 폭은 좁아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대도시를 선택하는 이유다. 비록 외롭지만.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과 대도시에서의 속내 감추기, 별 차가 없다. 다만 그것의 대상과 형성되는 이유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같다. 바로 외로움의 뒤안길이 자리한다는 것. 이나 저나 결국은 쓸쓸함이 태동된다는 것이다. 가족, 지인들과 함께 하는 환경이든, 혹은 일면이 없는 군중 속의 상황이든, 인간은 외로움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대도시라는 범주가 무의미해졌다. 특별한 상황을 필요치 않는다. 일상에서도 그것은 늘 함께 한다. 그림자처럼 말이다. 어쩌면 문명이 인간에게 주는 이면이다. 그러기에 발달된 사회관계망 서비스 시스템은 인간의 쓸쓸함을 한 층 더 심연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더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나 홀로 길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혼자다. 그렇다. ‘모든 사람은 혼자다’. 이는 작가이자 철학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명제다.


참고한 책: 강신주, 『철학vs철학』, ㈜그린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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