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직 칼럼] ‘울분 사회’와 ‘공정의 가치’

강현직 주필 기자 / 기사승인 : 2019-10-31 16: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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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직 주필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한국인 43.5%가 만성 울분을 느끼고 있으며 젊은 층일수록 울분을 많이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울분은 사회적인 부당함에 대한 감정이고 또 부당함은 삶이 불공평하고 자신의 일상이 불공정함으로 비롯되는 감정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통합의 중요한 아젠다로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는데 울분은 바로 그것이 안 돼서 생겨나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자신이 부당하게 취급받고 어떤 관계에서 자신이 정의에서 어긋나고 모욕적인 일을 경험함으로써 비롯되는 감정 즉 취업난 속에 편법 취업 뉴스를 접하거나 입시 비리 뉴스를 볼 때나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당하는 것을 접하며 울분이 쌓인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층들이 울분을 더 느끼는 것은 공정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이 어느 세대보다 강한데 요즘 사회가 나 아닌 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불법과 편법이 일상화 되어 가는데 기인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사회는 최근 ‘조국 사태’를 겪으며 많은 국민들이 분노를 보다 강하게 느끼는 울분 사회가 됐다. 사모펀드나 웅동학원, 자녀의 부정입학 의혹 등 모든 과정에서 바르고 정상적이 아닌 상황에 대해 상실감이 더욱 커지고 특히 조국 전 장관이 남들의 비위에 대해 주장했던 발언들이 모두 언행불일치로 나타나면서 위선자의 모습으로 각인됐다. 진보와 개혁을 주장했던 글들이 국민을 더욱 자극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사태로 돌아선 민심을 추스를 카드로 ‘공정개혁’을 꺼내 들었다. 국정 혼란에 대한 책임 문제를 덮고 국민이 느낀 분노를 역으로 ‘공정 가치’라는 화두로 전환했다. 국회 시정연설에서 ‘공정’을 무려 27번 강조하면서 공정사회를 위한 첫째 과제로 검찰 개혁과 공수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 조국 가족 비리의 발단이었던 대학 입시의 수시비율을 축소하고 정시비율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을 의제로 내세워 선제적으로 국면을 주도하겠다는 것인데 성공 시나리오를 써내려갈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국민들은 겉으로는 ‘공정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진정성과 개혁성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다시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공정 몰이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각이 많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국민 앞에 약속했다.

존 롤스는 공정은 정의, 평등과 밀접히 연관돼 있으며 정의는 모두의 자유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 약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때만 불평등이 허용된다는 최소수혜자 우선 고려 원칙, 직무와 직위가 만인에게 열려 있는 공정한 기회의 평등 원칙으로 구성된다고 강조했다. 정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 가운데 낙오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평등을 함께 한다.

고대 권투에는 ‘체급’이 없고 체격 차이가 경기력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귀족과 노예로 나뉘는 것도 신이 정한 ‘불평등’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공평은 인간 사이의 평등과는 관계가 먼 개념으로 ‘차등’을 전제로 신분 차이를 인정하고 같은 신분에서 균등하게 나눠 주는 것을 ‘공평’으로 여겼다. 공평과 공정, 사실상 같은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으나 엄밀히 따지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공평’이 체급을 나누고 체급 내의 규칙을 정하는 것과 관련된 개념이라면, ‘공정’은 그 규칙을 지키는 것과 관련된 개념이다. 일단 링에 오른 선수들이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공정’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 들어 신분제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엄연히 ‘금수저’가 존재하고 출발점이 확연히 다르다. 오히려 귀족과 노예로 나뉜 옛 신분제에서는 차별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 상대적으로 분노와 울분이 적었다 해도 막말은 아니다. 인지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은 ‘특권을 누리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특권을 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주어진 제도와 여건을 이용했을 뿐’이라고 자기 정당화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화가 집권세력과 지지층 전체에 증폭되면서 국민 상실감은 악화됐다. 현재도 우리 사회는 극심한 국론 분열과 세대 갈등이 진행 중이다.

요즘 우리 사회 갈등의 본질은 진보를 자임하는 지도층의 특권과 반칙, 공정의 무시에 있다. 공정의 가치를 앞세우고 공정사회를 실현하려면 먼저 자기반성과 합당한 실천이 있어야 하는데 여당 대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청년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은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조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공정’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공정은 어떤 사안을 평가하고 판단함에 있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경우를 동일한 비율로 다루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판단이나 정책 실행 과정에 사사로운 이익 즉 특권이 개입하지 않고 대우나 이익 배분, 결과를 공평히 하는 것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공정의 가치’를 지켜낼지 우려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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