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신종 코로나 쇼크와 공포의 심리학

송남석 기자 / 기사승인 : 2020-02-12 0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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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석 아시아타임즈 편집국장

누군가 한 사람이 거칠게 소리를 치며 거리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댐이 무너졌다"고 외치면서….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씩 덩달아 뛴다. 또 다른 누군가는 "동쪽으로, 동쪽으로"를 외친다. 공포감은 순식간에 퍼졌다. 달리는 사람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마지막에는 2000~3000명에 달하는 군중이 앞다퉈 동쪽을 향해 내달린다.

 

분명한 팩트도 없었다. 무작정 뛰고 보자는 군중심리가 이성적 판단을 압도해버린 순간이다. 민병대가 확성기에 대고 댐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수차례 방송을 한 뒤에야 공포감은 진정됐다. 1913년 3월12일,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에서 낮 12시부터 2시간 동안 벌어진 실화다.

 

군중이 공포심리에 휘말릴 경우 이성은 너무도 쉽게 무너진다. 대뜸, 남들과 같은 행동을 해야 편안함을 느끼는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라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집단행동이 오히려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는 경우를 숱하게 목격해 왔다.

 

"다리 위에 자폭 테러범이 있다." 2005년 8월31일 이슬람 시아파 순례객들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티그리스강의 알아이마 다리를 건널 때 한 사람의 외침이다. 겁에 질린 순례객들이 서로 밀치기 시작했다. 다리 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다리 난간이 무너지고 강에 빠져 익사하거나 압사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사상자만 12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현장에는 테러범도, 폭탄도 없었다.

 

프레임을 확 당겨 지금 우리의 모습을 투영해보자. 최근 전 세계의 핫이슈로 떠오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얘기다. 지난해 12월 12일 중국에서 첫 확진자를 낸 이 바이러스는 전세계 30곳 안팎으로 확산됐고 1월 20일 국내 첫 환자가 보고됐다. 최초 발생보고 이후 딱 두 달이 됐다.

 

국내에서 확진자가 나온 지는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매일, 매시간이 전쟁통이다. 마치 전장 상황을 생중계하듯 경쟁적인 속보와 단독기사들이 넘쳐난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숫자와 감염자 동선 공개는 거의 리얼타임 수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괴물이 온오프라인을 점령해 버린 지 제법 됐다. 일부에서는 정치나 경제, 사회 등 분야를 넘나들며 응용, 혹은 파생기사들을 확대 재생산시키며 이 시대의 또 다른 괴물을 비육시켜나가고 있다.

 

오리엔탈 포비아(Oriental phobia), 혹은 차이나 포비아(China phobia)를 부추기는 일부 인종주의자들에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훌륭한 먹잇감이다.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권의 무능을 꼬집는 프레임으로 덧씌워지고 있다. 세계적 재앙, 혹은 국가적 재앙을 대하는 일부 위정자들의 혹세무민(惑世誣民)적 프레임에 기인하는 바 크다. 여기에 공포와 자극을 소재로 삼아 돈벌이에 급급한 자들의 탐욕도 한몫 거들고 있다.

 

매년 한국에서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자 수만 2300명에서 2900명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다. 미국은 이번 겨울에만 독감으로 82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아직 대한민국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분명 경각심은 가져야겠지만, 지나친 공포감만은 버려야 한다.

 

요즘 뉴스를 접하다 보면 매일매일 나라가 무너질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모든 이슈들을 집어 삼킨다. 최소한 전 세계적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이나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에서 만이라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요즘 사회 분위기를 심하게 표현하자면 거의 호들갑 수준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국가나 사회적 재앙이 발생할 경우만이라도 컨트롤센터(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 문화부터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더욱 절실하게 드는 생각이다. 그것이 사고하는 현대 문명인들의 올바른 태도 아닐까.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면 분명 지적하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일정한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금도를 지켜야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불안을 부추기는 것은 공멸이다. 현실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쪽이 더 타당한 이치 아닐까.<송남석 아시아타임즈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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