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나 칼럼] 예술을 통한 사회 읽기

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 기사승인 : 2020-10-29 14: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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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얼마 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SNS에 돌고 있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조심성 없는 정책이 현재 활동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풍자된 것이다.


2017년 2월, 뉴욕에서는 미국 현대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MoMA가 대통령의 반 이민 행정명령에 맞서 전시항거를 개최했으며, 아예 한 층은 보란 듯이 이슬람 국가 출신 작가들의 작품로만 전시했다. 바로 미술관 현 시대의 불합리함이나 부조리한 사회 풍경을 고스란히 대변한 것이다.

이 땅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풍요와 비정함을 동시에 포착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조리함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표현한다. 물론 뉴스매체를 통해 보여주는 직접적인 방법이 아닌, 예술적 능력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이다. 이것은 단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미 원시 시대의 동굴 벽화에서 샤머니즘이라는 당시 종교적 영향이 드러났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들에서 종교 개혁을 비롯한 프랑스 대혁명, 독일의 표현주의에서 1,2차 세계대전, 미국의 독립과 노예해방을 거쳐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미술사는 하나의 큰 흐름으로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선사시대 때부터 만들어진 투박한 예술품들을 시작으로, 삼국 시대의 왕의 무덤 속 벽화를 통해 우리는 당시 시대의 생활상이나 사회상을 알 수 있으며, 고려 시대의 정치 상황과 사회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불교미술과 더불어 조선시대에 등장한 민화, 일제 강점기에 항거하던 그림들을 비롯해서 나아가 지금의 동시대 미술에서는 인종, 생태, 환경, 역사, 젠더에 이르기까지 현대 시대의 다양한 이슈에 맞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예술을 통해 그 시대를 볼 수 있으며, 철저하게 사실만 기록된 역사에서는 찾기 힘든 그 당시의 민중의 감정이나 시대의 분위기까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또, 전쟁과 폭력, 정치적 억압이나 사회적 비극 등이 내재된 작품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써, 내가 어떠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옳은지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탐구의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도와준다.

예술은 역사와 그 궤를 함께 하며,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일깨워 준다. 때로는 사적인 의견을 대변하기도 하며, 때로는 아고라 같은 광장의 역할을 한다.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외침 대신 소중한 메시지를 담고, 절대 다수에 의해 정해진 어떠한 룰과 그 룰에서 상처받은 인간의 내면을 표출하고 회복시키는 힘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세상을 고치지는 못해도 변화 시키는 힘을 예술은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예술 작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또한 중요하다. 


예술을 감상하는 목적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최소한 예술을 유희로 전락 시키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예술이 유희가 된다면 이것은 그저 특별한 사람들만의 고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취미로 전락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우리가 예술을 사회를 읽는 수단으로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더 이상 어려운 것이 아니게 되며 더욱 친밀하게 느껴진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어떠한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도구의 사용법을 알아야 하듯, 제대로 그림을 보기 위해 조금만 노력한다면 일제 강점기나 한국 전쟁 등의 어려웠던 상황에서도 그 뿌리를 잊지 않았듯 정확하고 뚜렷한 한 주체로써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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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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